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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영화 ‘베테랑’에서 맷돌 손잡이가 뭔지 알아요? 어이라고 해요. 맷돌을 돌리다가 손잡이가 빠져. 그럼 일을 못하죠? 그걸 어이가 없어. 해야할 일을 못한다는 뜻으로 어이가 없다고 하는 거예요. 내가 지금 그래. 어이가 없네라는 대사가 나온다. 거친 표현이지만, 눈뜨고 코베이게 생긴 상황에 처한 우리 화성시민의 심정에 가장 들어맞는 표현이 아닐까?
이달 초 중앙정부가 지자체 간 균형발전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지방재정 개편안’을 내놓았다. 지자체가 걷고 있던 법인지방소득세를 공동세로 전환하고 조정교부금 우선배분특례도 폐지해 상대적으로 건전한 재정자립도를 갖춘 시군의 몫을 재정이 열악한 시군으로 나눠주겠다는 소리다.
어찌보면 지자체들에게 십시일반 걷어 타 지역 재정을 메우고 전체의 균형과 화합을 도모한다는 그럴 듯한 계획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전국 226개 지방자치단체 중 기본경비를 충당할 정도의 재정자립도를 갖춘 곳은 몇 곳 되지 않는다. 경기도 내 재정자립도 1위인 우리 시조차 2010년 OECD 평균 60.3%보다 겨우 1.2% 높은 61.5% 밖에 되지 않는데 우리 시가 그렇다면, 타시는 오죽할까? 이들의 세입을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나눠준다 하더라도 최소 20억원에서 최대 200억원 정도 밖에 받지 못한다. 가난한 자식 중에 그나마 형편이 조금 나은 자식의 주머니를 터는 것이 과연 균형발전인가?
이번 개편안으로 지자체들은 자주재원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중앙정부가 내려주는 자금에 목멜 수밖에 없게 된다.
애초 지자체의 재정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지자체의 주요 재원인 지방세가 전체 20%에 불과하고 나머지 80%는 국세에 편중돼있는 기형적 구조 때문이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이 5:5, 6:4에 이른다. 여기에 국가 재정지출은 중앙과 지방이 53대 47로 비등한 상황이다.
무상보육, 기초연금, 누리사업 등을 지자체 예산으로 떠넘기면서 사회복지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것도 한 몫 한다. 화성시의 경우 2015년 3천52억 원, 2016년 3천582억 원으로 한 해 동안 무려 500억 원이 늘어났다. 없는 살림에 중앙정부의 각종 정책사업 뒷바라지까지 주민을 위한 기본적인 사업만으로도 정말 허리가 휠 지경이다.
하지만 중앙정부는 지방과의 소통도 단절하고 개편안 강행만이 해답이라 주장한다. 또한 지방재정의 어려움을 일부 지자체가 외면한다면서 ‘부자시’ ‘탐욕스러운 지자체’라는 여론몰이를 한다.
재정만으로 부자시를 판단할 수 있을까? 우리 시청 앞에는 2017년에 개관 예정인 화성시서부복합문화센터가 한창 공사 중이다. 서울 대비 1.4배의 면적을 가진 드넓은 우리 시에 타 시군에선 손쉽게 볼 수 있는 여성과 청소년 복지 시설이 현재 단 하나뿐이기 때문에 시민들은 얼른 공사가 끝나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복지시설뿐만 아니라 도로를 포함해 62만 시민들을 위한 기반시설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현실에도 중앙정부는 부자시라는 말놀음으로 시민들의 마음을 상처 내고 있다.
이율배반적이게도 지난 2009년, 중앙정부는 지방소비세·지방소득세를 도입해 완전한 독립세로써 지자체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구조를 정착하는 동시에 기업유치에 활용할 수 있는 조세정책수단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그런데 이번 개편안으로 지방소득세가 축소되버린다면, 지자체들은 실질적으로 과세자주권을 침해당하는 동시에 그간 기업 유치에 기울인 노력들은 위축되고 지역 경제 활성화까지 요원해지게 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 지자체가 시민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힘 자체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자주재원 확보가 어려운 지자체들은 중앙정부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주민 생활에 필요한 사업들은 지역을 가장 잘 아는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이를 위한 자주재원 확충은 필수이다. 중앙정부가 각 지자체들의 재정 수요와 지역 특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국가 정책만을 따르게 한다면, 시민들의 삶의 질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와의 조화로운 발전과 민생 현장인 지방자치가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무엇이 필요한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시민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성장동력을 키우는 지자체의 노력을 인정하고, 국민행복의 파트너로서 독립성을 갖출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길 바란다. 국민 행복의 열쇠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의 상생에 달려있다.
채인석 화성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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